일탈:Eternal
3화
촛불든여우72026. 05. 18. 09: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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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
홍과장, 아니 아내의 질문이 귀에 아련히 남았다.
'당신은 변할 건가요?'
'당신은?' 이제껏 본 나는 내가 아니었나? 아내는 누구를 말하는 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분명 홍과장이 나를 깨웠는데? 꿈이었는지 지나간 기억이었는지 혼란스러웠다.
머리를 감싸쥔 나를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홍과장이다.
'부장님, 어디 안 좋으세요? 오후에 외부 미팅 가능하시겠어요?' 홍과장이다. 방금 전 아내는? 눈앞의 여자는 봄바람 살랑이는 홍과장이었다.
혼란은 잦아들고 어째서인지 내 머릿속의 궁금증은 사라져 있었다. 아니, 내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때는.
홍과장을 포함한 다른 직원들과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매번 먹는 똑같은 메뉴들. 짜장면, 짬뽕, 탕수육. 냄새도, 소리도, 테이블 위 물수건도 모든 게 평소와 같았다.
홍과장의 부드러운 담소가 식사 자리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봄바람이었으니까. 부서원 간의 협조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이유가 홍과장의 봄바람인 것 같았다. 모든 부서원들이 홍과장의 조언과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오후가 되었다. 예정된 외부 미팅을 위해 자리를 나섰다. 홍과장이 함께였다.
내 차를 사용해 움직였다. 홍과장이 말했다. '오늘 미팅 끝나고 바로 퇴근하려고 해요. 그래서 차 안 가져왔어요. 부장님 어디까지 태워 주실 거에요?' 평소 대중교통의 번잡함과 가끔씩 느껴지는 불쾌한 경험이 그녀를 자차로 출퇴근하게 했는데. 외근이 있어도 각자의 차로 움직이던 그녀가 오늘 내 차를 탄다? 일부러 차를 안 가져왔다? 뭐지? 그때 옆자리에 타는 홍과장의 발을 보았다. 맵시 있는 정장 바짓단 아래로 가지런히 모아진 작은 발을 감싸고 있는 스트레토 힐. 분명 어디서 봤는데? 이내 눈은 앞을 향했고 차는 출발했다.
미팅 장소를 향한 차 안에서 홍과장은 종달새처럼 떠들었다. 길에서 마주친 강아지 이야기, 오늘 저녁 뭘 먹을지, 다음 주 남동생이 휴가 받아 집에 온다는 이야기.
묘한 기시감이 일었다. 어디서 봤는데?
낮에도 도심의 도로는 혼란스러웠다. 옆자리 홍과장의 재잘거림이 교차로를 향하는 내 주의를 흩었고 몇 번의 신호 후 교차로를 지날 때 알았다. 그곳을 지나고 있음을. 인식도 못했다. 아침의 그 교차로를 퇴근 시간이 아닌 낮에 지나게 될 줄은.
귀를 간지럽히던 재잘거림이 한창이던 그때 느껴진 강한 충격! 그때서야 깨달았다. 맞다. 교차로. 나는 옆자리의 홍과장을 보았다. 없었다. 재잘거리던 홍과장은 뒷자리로 어느샌가 자리를 옮겼고 그 옆에 또 다른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아내였다. 내 사랑 아내.
홍과장이 말했다. '그분이 다시 기억하네요.' 아내가 말했다. '그이가 다시 기억하네요.' 그리고 동시에 두 사람이 말했다. '나는...', '나는...'
이후의 기억이 없다. 분명 둘이었는데 어느새 그 둘은 하나가 되었다. 아내였다. 지금 다시 아내이자 홍과장이었다. 그리곤 눈앞이 어두워졌다.
---
어딘지 모르는 곳에 내가 앉아 있었다. 내가 앉은 곳의 위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였는지 모를 그때부터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위를 쳐다보면서. 올려다본 위는 알 수 없는 형태였다. 열린 건지. 닫힌 건지.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인지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의 넓음을 보여주는 위는 이곳과 같은 다른 곳이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라고 생각의 넓이를 넓혔다는 것. 나와 같은 많은 존재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위를 보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존재들을 인식하고 인지된 존재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듯 했다. 그것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고, 언제까지인지 모르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어느새부터인가 인지되기 시작한 이상한 현상. 어떤 존재들은 사라졌고,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나타났다. 그리곤 다시 사라짐과 나타남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그 존재들은 자신의 부재를 기억하지 못했다. 분명히 부재가 존재함에도 그들은 연속성이 그들의 불변 속성인 것처럼 자신을 인지했다.
자연히 나의 의심은 하나로 수렴했다. 그럼 나도 부재와 실재를 반복하고 있나? 다만 기억을 하지못 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의심이 확신이 되어갈 때쯤 또 다른 확실한 현상이 인지되었다.
언제인지 모를 때부터 내 옆에 한 존재는 항상 같이 있었다.
우리들 사이에서도 그 존재는 무언가 달랐다.
특별히 관심을 두지않는 나의 성향이 그저 흐르는 시간 속에서 부재와 존재를 반복하며 관계의 적재가 쌓이는 일 없이 다른 존재와의 거리감이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유독 내 옆에 가까이 실재하는 그 존재만큼은 달랐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시간 속에서.
그 존재는 나의 옆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떤 관계의 적재도 없었지만 나의 옆에서 나를 항상 보고만 있었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다른 존재들의 부재와 실재를 보면서 이 세계의 구조에 의문이 시작될 무렵 알게 된 관찰의 결과. 내 옆의 존재는 부재가 없었다. 한 번도 내 옆을 떠난 적이 없음을 알게된 건 세계의 규칙이 눈에 들어오고 난 후에도 얼마인지 모르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한 번도 그 존재의 부재를 확인한 적이 없다는 것을. 다른 존재들은 부재와 실재를 수없이 반복했다. 특별한 주기는 없었지만 반복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유독 내 옆의 말없는 그 존재만큼은 내 인지 속에서 한 번도 부재가 없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내 의문은 커져만 갔다. 왜 나만 그대로이지? 다른 존재들의 부재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지 의문이 언제부터인가 머릿속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기억을 못하는 것인가? 그리고 어째서 내 옆의 존재 또한 부재가 보이지 않는지?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기억인가? 지금 나의 머릿속에는 언제인지 모를 그때부터 그저 이곳에서 위를 보는 행위가 시작된 지금까지 너무 오래된 일상의 기억만이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떠올랐다. 나도 부재와 실재를 반복하나? 단지 기억을 못할 뿐. 의심의 증폭이었다. 그때 잠깐 눈앞이 흐려지고 다시 맑아짐이 찾아왔다. 항상 실재하던 내 옆의 존재가 없었다. 아니 없는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난 곧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그 존재는 여전히 내 옆에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이상한 위화감이 나를 흔들었던 그날 이후로 헤아리지 못하는 시간의 사이에서 잠깐이었던 감각의 이상은 반복이 되풀이되었고 그때마다 내 옆의 존재도 또한 부재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 번의 위화감이 반복되는 사이 난 한 가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도 반복하는 존재인가? 이 세계에서 부재와 실재를. 그리고 내 옆의 존재 또한 같음을. 그럼 의심이 한 가지만 남는다. 우리는 다 같이 실재와 부재를 이 세계에서 반복한다. 하지만 그 존재의 부재를 나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언제부터인지 묘한 어긋남 속에 잠깐씩 그 존재의 부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부재와 실재의 과정을 기억하기 시작할수록 나를 지켜보던 존재와의 부재 주기는 눈에 띄게 어긋났다.
어느 날 생각이 말이 되었다. 부재와 실재가 왜 반복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무도 내 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다른 존재들은 내 말을 듣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다만 내 옆의 존재만은 달랐다. 존재가 답했다.
'의미가 의미 있을까요? 우리의 반복이 왜 궁금하죠?'
셀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나의 생각이 아닌 다른 존재와의 첫 대화였다.
내가 물었다. '우리는 왜 존재할까요?' 존재가 대답했다.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나도 몰라요. 그저 반복일 뿐.'
그 때 보았다 내 앞에 서있는 존재의 눈에서 깊이를 알수 없는 절망을.
이후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 존재가 나를 쳐다보는 슬픔과 좌절만이 남았다.
---
눈을 떴다. 차는 교차로를 지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옆자리 아내는 여전히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퇴근길이었다. 라디오의 DJ는 연인들의 슬픈 이별 이야기를 사연으로 읽고 있었다.
옆자리의 아내를 보았다. 무엇인지 모르는 기억 속에서 보았던 그 존재의 모습이 겹쳐졌다.
지금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운전 중인 내 머릿속에 선명한 기억 속 그 존재의 부재를 보지 못한 이유가 떠올랐다. 내가 겪는 부재와 존재의 부재 주기가 같았기에 그 존재가 항상 내 곁에 있는 것으로 인지했다는 것을. 더해서 한 가지 사실이 내 기억에 병합되었다. 존재의 부재 기간마저도 세계의 반복 속에서 나의 부재 기간과 항상 함께였기에 우리는 서로의 부재를 인지할 수 없었음을.
아직 모르는 한 가지, 그 존재가 보였던 서글픈 얼굴. '기억하지 말아야 했다'는 아내의 말.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내가 나를 쳐다보았다. '다시 기억했나요? 이번에도 당신은 기억했네요. 왜 당신은 변하지 않나요? 왜 항상 우리는 이렇게 끝나야 하는 거죠?'
아내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나의 의식은 흐려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눈을 떴다. 어디인지 모르는 그곳.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 그곳. 그리고 내 옆에는 여전히 그 존재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마지막으로 내 옆의 존재가 무엇인지.
존재가 말했다. '왜 당신은 다른가요? 왜 우리의 반복을 받아들이지 못하나요?'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대화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대답하지 못하는 나에게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난 언제나 당신의 옆에서 지켜볼 거에요. 이 반복이 계속되는 한. 어긋난 결과로 우리의 경험이 망가져도 난 다시 당신 곁에서 온전한 경험을 지켜줄 거에요. 언제까지나.....' 그녀는 슬픈 눈으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이 굴레를 인지하는 한 우리는 계속 슬픈 반복을 해야 한다는 걸. 그래서 그 존재의 실재가 어떤 형태로 나의 실재 기간 동안 변주되어 나에게 다가온다 해도 나는 항상 같은 선택으로 이 굴레의 슬픈 결말을 반복할 것임을.
그녀가 다시 물었다.
'이제는 선택할 수 있어요. 이후는 당신에게 달렸어요.'
모르겠다. 무엇을 묻는 걸까?
언제부터인지, 언제까지인지 모르는 이 반복 속에서 내 기억은 어떤 변화를 보였을까?
그녀가 슬프지 않은 반복은 어떤 선택이어야 할까?
반복되는 부재의 경험을 모두 잊는 것과, 반복되는 부재 속에서 기억의 혼란으로 부서지는 것.
다시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녀는 서글픈 표정으로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 완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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