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Eternal
1화
촛불든여우72026. 05. 18. 07: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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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4월의 벚꽃은 매년 같은 자리에 피는데, 올해는 왜인지 달라 보였다.
매번 둘만의 데이트를 요구하는 아내의 투정에 못 이겨 찾아온 이곳. 아내의 제안으로 찾아와 함께 걷는 벚꽃나무 길.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라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한산했다. 꽃잎이 바람에 흩어지고, 아내가 내 팔을 잡고 걸었다. 평범한 봄 오후였다. 나는 아내의 체온을 느끼면서 걸었고, 머릿속은 오랜만에 여유로운 평범한 무의식으로 비어 있었다. 50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철없던 20대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사랑하는 아내의 미소와 웃음과 함께 걷고 있었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기억.
"우리는 언젠가 지금과 같은 산책을 손잡고 했었는데?" 무의식 속에서 입으로 나온 말에 아내는 평소의 장난기 그대로 나에게 받아쳤다.
"우리 여기 처음 왔는데? 당신 결혼 전 다른 여자랑 왔었구나!"
아내 특유의 장난기였다. 장난기 가득할 때면 누가 봐도 해맑은 모습의 미소녀였다.
아내의 대답 이전에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그저 자연스레 웃어주면 넘어갈 일이었는데 생각과 반대로 내 얼굴은 굳어갔다. 아내 외에 다른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건 아내도 결혼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길을, 이 각도로, 이 손의 온도로 걸었던 기억은 분명히 내 머리 한구석에 또렷이 존재하고 있었다. 꿈도 아니고 상상도 아닌, 흔한 데자뷔도 아닌 원래 경험이 사진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왜요, 진짜 있어요?"
아내가 마치 화난 듯이 눈을 치켜떴다. 나는 그 표정을 안다. 그렇기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해본 말이야. 나 당신밖에 없는 거 알잖아!"
꽃잎 하나가 아내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아내는 그걸 보지 못한 채 웃으며 걸었고, 나는 그 꽃잎이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실제인가? 착각인가? 혼란스러움이 먼저 다가오지만 방금 겪은 기억이 표면으로 떠오른 지금, 이미 겪은 것 같은 어렴풋한 착각과는 분명히 달랐다. 선명했고 구체적인 사실이었다. 계절도, 길도, 손의 감촉도 전부 지금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 기억 속의 오늘은, 분명히 오늘이 아니었다.
---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종달새처럼 떠들었다. 길에서 마주친 강아지 이야기, 내일 뭘 먹을지, 다음 주 아들이 집에 온다는 이야기.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서 핸들을 잡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평소의 사유와는 다른 형태의 상상과 현실이 얽혀있는 기억의 혼재였다. 꽃길 위의 기시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랑스럽게 잠든 아내가 밤 동안 꾸었던 꿈을 아침에 기억 못 하듯 희미해져야 할 것이 위화감으로 오히려 기억의 표면에 유독 도드라졌다. 집에 도착하고,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그 감각은 작은 구릉을 지나 언덕이 되어 있었다. 오후의 그 순간부터 무언가 내 안의 기억으로 표현되는 인과가 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실체는 없지만 뚜렷한 기억의 바닥을 깨고 올라오는 무언가.
새벽 2시, 아내는 오늘의 데이트가 기분 좋았는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은 사방의 고요함과 다른 유난한 소음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내부의 웅웅거림처럼 아무 자극도 없는데 견디기 어려운 자극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사랑하는 아내의 새근대는 숨소리만 조용하게 들리는 평소의 침실인데 나의 머릿속을 괴롭히는 소음이 무엇인지 견디기 힘들어질 때 침대에 누워 가만히 아내를 안았다. 수면 중에도 본능처럼 내 품에 파고드는 사람. 결혼한 지 이십 년이 넘었어도 이 감각만큼은 여전히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언젠가 새벽에 똑같이 아내를 안았을 때도 지금처럼 파고들었다. 그 기억이 선명했다. 계절도 비슷했다. 방의 온도도, 아내의 숨소리도.
우리 부부는 잠옷 취향이 달랐기에 신혼 때부터 커플 잠옷을 원하는 아내와 편하게 입자는 나와 반복되는 사랑 싸움이 밤마다 의례적인 행사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레 서로의 취향을 인정하고 각자의 모습으로 침대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아내가 무슨 옷을 입고 잠드는지 신경 써본 적도 없고 기억도 없는데 오늘 밤은 선명하게 기억이 내 의식을 헤집고 올라왔다. 그 기억 속의 새벽과 지금이 똑같았다. 아내가 입은 것, 내가 입은 것. 방 안의 빛. 창문 너머 들리는 바람 소리까지. 나는 눈을 감지 않은 채 천장을 바라보며 아내를 안고 있었다. 아내의 숨소리가 규칙적이었다. 그 규칙 안에서 나만 혼란스러운 기억 그대로 깨어 있었다.
---
어느새 잠들었는지 아내의 목소리에 힘겹게 눈을 떴다. 부지런한 아내는 평소와 같이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도 출근 준비에 바쁘면서도 결혼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아침 준비를 거른 적이 없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가스불 켜지는 소리, 냉장고 열리는 소리까지 평소와 같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난 내 품 안의 아내를 인지했다. 주방의 아내와 품 안의 아내, 지금 이 상황이 뭔지? 분명히 둘 다 선명했고 아내가 틀림없었다. 이런 상황을 어이없다고 하는 건가? 넋을 놓고 있는 나에게 아내의 날카로운 재촉이 들려왔다.
"당신 지각할 거예요?"
품 안의 아내는 "우리 좀 더 자요" 하며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지금 상황 파악이 필요한 의식만이 머릿속에서 열렬히 돌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일단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몸을 움직였을 때 내 품 안의 아내는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참다못한 아내가 침실로 들어와 이불을 걷으며 음식을 준비하던 차가운 손으로 내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아이고! 부장님 이제 일어나세요." 확실히 느껴지는 실재였다.
아내가 혀를 찼다. 나는 그제야 온전히 몸을 일으켰고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정신없이 준비했다. 면도를 하다가 거울을 한참 바라봤다. 거울 속에는 매일 아침 보았던 내가 있었다. 달라진 것이 없는.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평소와 같이 아내의 회사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매일 다니는 길이므로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다. 아내의 다급한 외침 이전까지.
"여보, 이 길 아니에요."
"응? 이 길 맞는데?"
"아니에요, 오늘 아침부터 이상하더니, 어서 차 돌려요."
분명히 내가 가려는 길이 맞는 길이다. 하지만 아내는 의아한 얼굴로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 돌기는 했지만 다행히 아내를 제시간에 내려 줄 수 있었다. 아내는 손을 흔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점점 깊어지는 혼란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분명히 맞는 길인데?
늦지 않게 내 사무실로 방향을 돌렸다. 주차를 하기 위해 입구에 들어서는데 현관 앞 회사 상징물의 모양이 이상했다.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를 멈추고 건물을 올려다봤다. 'FSY', 우리 회사의 이름이 아니었다. 어제까지는 분명히 'MIMORA'였다. 지난주까지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내 기억 속의 회사를 내비게이션에 다시 입력했다. 검색 결과는 지금 내가 주차하려는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건물 이름과 회사 상징물이 달라져 있었다. 차에서 내려 로비로 올라가자 경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같은 얼굴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익숙한 층에서 내렸다. 동료들의 아침 인사가 이어졌다. 같은 사람들, 같은 책상, 같은 직급의 명패들. 그런데 이유 모를 위화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사무실의 공기가 달랐다. 아니면 조명인가?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느껴지기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
---
그때였다.
"부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밝고 청량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사무실의 얼음공주, 골드미스 홍 과장이 서 있었다. 5년을 같은 부서에서 일했다. 그 여자가 먼저 인사를 건넨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인사를 해도 턱을 살짝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어색하게 답했다. 홍 과장은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동일한 사람이었다. 분명히.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 같은 자리. 그런데 지난주의 홍 과장이 아니었다.
책상에 앉아 PC를 켰다. 모니터가 켜지는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개인 톡 알림이 울렸다. 황 대리였다. 사내 괴롭힘으로 우울증 관리가 점점 어려워진다며 개별 면담을 신청하는 내용이었다.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문체였다. 보내기 전에 여러 번 고쳐 썼을 것 같은 문장들. 나는 화면에서 눈을 뗐다. 저쪽 자리에서 황 대리가 보였다. 헤드셋을 끼고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평소의 황 대리는 사무실 분위기 메이커였다. 아침마다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점심시간이면 누군가를 웃겼다. 누구보다 밝은 사람이었다. 지금 황 대리의 어깨는 내려가 있었다.
책상 위에 노 주임의 기안문이 올려져 있었다. 노 주임. 입사 3년 차. 기안을 올릴 때마다 내가 핀잔을 줄 수밖에 없었던 사람. 지난달에도 숫자가 틀린 채로 결재를 올려서 돌려보냈다. 펼쳤다.
완벽했다.
서식도, 근거 자료도, 숫자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경력 10년 차 직원이 써도 이 정도면 잘 썼다 할 수 있는 문서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나는 기안문을 내려놓고 잠깐 생각했다. 홍 과장의 인사. 황 대리의 메시지. 노 주임의 기안문. 전부 뒤집혀 있었다.
---
점심시간이 되어 일부러 부서원 모두 점심을 함께 먹자고 의견을 냈다. 오전 내내 황 대리와 면담을 했다. 이십 분 동안 나는 거의 말하지 못하고 그냥 들었다. 황 대리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오래 참아온 것들을 꺼냈다. 면담이 끝나고 황 대리는 고개를 숙이며 나갔고 나는 빈 회의실에 잠깐 혼자 앉아 있었다.
회사 근처 중국집으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고, 메뉴를 고르고, 주문이 들어갔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냄새도, 소리도, 테이블 위 물수건도 모든 게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그때서야 보였다.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함께 보낸 시간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들이 꺼내는 기억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때 부장님이 그렇게 정리해 주셔서 프로젝트가 살았죠."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런 적 없었다. 야근을 밥 먹듯 했던 그해 가을, 막판에 수습한 건 내가 아니었다.
"맞아요, 노 주임이 그때 밤새서 마무리했잖아요."
옆에서 누군가가 맞장구를 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억은 같았다. 사건도 같았다. 그런데 결과가 달랐다. 역할이 바뀌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밤을 새운 사람이, 수습한 사람이, 칭찬받은 사람이 달랐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건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기억의 오류도 아니었다. 같은 사람들인데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이상한 것이 없다는 듯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나만 알고 있었다.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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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퇴근길 러시아워는 지나칠 정도로 복잡했다. 평소 신호등 두 번에 지나갈 교차로를 다섯 번이 지나도록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차의 브레이크등이 빨갛게 켜졌다 꺼졌다 반복했다.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음량을 껐다.
내가 지나갈 타이밍이 되어 교차로를 질러갔다.
그 순간이었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세계가 한 겹 얇아지는 느낌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언가 바뀌었다. 벚꽃길에서 느꼈던 그 기시감과 비슷했지만 달랐다. 그건 기억의 문제였다. 이건 지금 이 순간의 문제였다. 교차로를 통과하기 전과 후가 달랐다. 나는 그냥 계속 달렸지만 백미러로 교차로를 한 번 돌아봤다. 평범한 교차로였다.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고 다음 차들이 통과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아내의 반응을 살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내게 주방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저녁이었다. 아침의 해프닝을 종달새처럼 재잘대며 물어볼 줄 알았는데 아내는 저녁 반찬 이야기를 했다. 내가 해프닝 이야기를 꺼냈다. 아침에 길을 잘못 들었던 것, 건물 이름이 달랐던 것. 아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예요? 당신이 우리 회사 앞에 잘 내려주고 갔잖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었다. 설거지를 했다. 샤워를 했다. 손이 움직이는 동안 머리는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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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내에게 물었다. 조심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척.
"울 아들 태어난 날 기억해요? 내가 펑펑 울었던 거."
아내는 잠깐 나를 봤다가 의아한 얼굴로 대답했다.
"당신이? 그날 애 태어나고도 한참 있다 와서는 회사 일 때문이라고. 울 엄마한테 원망 많이 들었잖아요."
교차로를 통과하는 순간 어제로 돌아온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내는 찻잔을 홀짝이며 뭔가 더 이야기했다. 목소리가 들렸지만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 첫째가 태어난 날, 나는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들었다. 손가락이 다섯 개인 걸 확인했다. 눈물이 났다. 참을 수 없었다. 아내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분명한 내 기억이었다.
처제가 6mm 비디오로 그날을 촬영했던 것이 기억났다. TV 밑 서랍을 열었다. 먼지가 쌓인 케이스들 사이에서 작은 테이프를 찾았다. 날짜가 볼펜으로 적혀 있었다. 아들의 생일. 아들방 책상 구석에서 오래된 6mm 카메라를 겨우 찾아냈다. 다행이라 할지 배터리가 남아 있었다. 테이프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흔들리며 시작됐다. 병원 복도. 처제의 목소리. 카메라가 흔들리다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막 태어나 우는 아이. 손가락 발가락을 확인해주는 의사의 손. 아내의 지친 얼굴. 그리고 처제의 목소리 — "형부랑 똑같다."
나는 없었다.
화면 안 어디에도. 아내 곁에도, 방 구석에도, 복도에도. 나는 없었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올해 초 졸업식 사진을 찾았다. 온 가족이 다 있었다. 아내와 아들. 내 기억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졸업장이 보였다. 확대했다. 학과명이 달랐다. 교육공학. 나는 직장과의 연결성을 위해 응용소프트웨어학과를 선택했다. 늦깎이 공부였지만 당당히 졸업했다. 그 기억은 선명했다. 졸업장을 받던 날의 느낌도, 지도교수의 얼굴도. 사진 속 졸업장은 달랐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굳어 있었다. 아내가 거실 소파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여보, 왜 그래요?" 나는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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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잠 못 이루는 새벽을 버텼다.
오늘 하루를 되짚었다. 벚꽃길의 기시감. 품 안의 아내. 잘못 든 길. 달라진 건물 이름. 뒤바뀐 동료들. 비디오 테이프 속 없는 나. 졸업장의 다른 학과명. 전부 오늘 하루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부 내 기억과 달랐다. 그런데 전부 증거가 있었다. 아내의 말, 테이프, 사진. 내 기억이 아니라 이쪽이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기억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의 순서를 하나씩 되짚었다. 벚꽃길. 새벽 침실. 아침 출근길. 그리고 교차로. 어긋남이 하루 종일 이어졌지만 교차로를 통과하던 그 순간 — 무언가 질감이 달랐다. 다른 어긋남들은 기억의 문제였다. 교차로는 달랐다. 지금 이 순간이 바뀌는 느낌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통과한 것처럼.
평소에 즐겨 하던 혼자만의 엉뚱한 상상이 이제는 모든 걸 의심하는 공포의 조각 찾기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공포 안에서도 하나의 생각이 놓이지 않았다. 언제부터 변한 거지? 퇴근길의 교차로에서 느꼈던 위화감이 원인이었을까? 그럼 그 교차로를 다시 지나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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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잠 못 이룬 시간이 지나고 출근길에 나섰다. 그 교차로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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