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밖의 손
달빛산책자92026. 06. 23. 12:3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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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밖의 손》
사랑은 집밥이고, 욕망은 때때로 외식이었다.
도입: 평온한 일상, 그리고 네 남녀의 오랜 우정
화창한 주말 아침,
네 사람이 함께 탄 세단이 부드러운 승차감을 유지하며 근교의 온천 마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내인 C와 오랜 세월 깊은 우정을 나눠온 K미, 그리고 K미의 남편과 나까지 총 네 사람의 동행이었다.
이들의 인연은 대학 시절의 캠퍼스 동아리에서 시작되어 사회에 진출한 지금까지도 단단하게 이어져 온 십년 지기 세월의 산물이었다. 주말이면 맛집을 찾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캠핑이나 펜션 여행을 떠날 정도로 두 부부는 서로의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친밀한 관계였다.
하지만 겉보기의 다정한 동행과 달리, 각자의 일상과 내밀한 사생활의 결은 저마다 전혀 다른 온도를 품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핵심 부서에서 실무를 총괄하며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었고, 아내 C 역시 감각적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갈증을 밤마다 뜨겁게 채워 넣었다. 주말 밤이면 침대 위에서 서로의 체온을 탐닉하며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가감 없이 누리는, 불꽃처럼 뜨겁고 조화로운 부부였다.
반면, 운전석 너머로 보이는 K미 부부의 공기는 가라앉은 수증기처럼 텁텁하고 무거웠다.
K미는 유능하고 꼼꼼한 성격 덕분에 중견 기업의 기획실 과장으로 재직하며 매일같이 야근과 서류에 파묻혀 살았다. 늦은 밤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도 그녀를 반기는 것은 가정의 온기가 아니라, 대외 영업과 회식을 핑계로 늘 만취해 들어와 거친 코를 고는 남편의 등짝뿐이었다. K미의 남편은 술을 사랑하는 정도가 지나쳐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기 일쑤였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의 존재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곧바로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K미는 통통한 체형에 앳된 얼굴을 지녔지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육덕지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런 그녀의 그 옷자락 아래로는 남편이 수년간 단 한 번도 제대로 들춰본 적 없는 풍만한 볼륨감과 부드러운 살결을 감추고 있었다.
남편의 무심함과 알코올 중독 가까운 습관 속에서, K미는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라는 깊은 자괴감과 함께 영혼마저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일상이라는 이름의 단단하고 차가운 감옥 속에서, 그녀의 청춘은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개: 여행지의 해방감과 달아오르는 술자리
“자, 도착했다! 다들 내리자고.”
내 목소리와 함께 차량이 온천 숙소의 너른 주차장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K미는 두 팔을 머리 위로 뻗어 길게 기지개를 켰다. 찌든 야근의 피로를 털어내려는 듯 밝게 웃었지만, 그 눈동자 한구석에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메마른 그늘이 남아 있었다.
이번 여행이 정해지기 며칠 전, C와 K미는 둘만의 술자리를 가졌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돌아온 C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던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 사람이 나를 여자로 보지 않으면…… 이제는 정말 우리 결혼생활을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
K미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C는 처음에는 남편도 나름대로 힘든 사정이 있을 것이라며 달랬고, 오래된 부부가 언제나 처음처럼 뜨거울 수만은 없다고 위로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술에 취해 돌아와 등을 돌리고 잠드는 남편 옆에서, 자신이 점점 여자가 아닌 생활의 일부로 변해가는 것 같다는 K미의 말에는 더 이상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날 C가 끝내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친구의 손을 잡아주는 일뿐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는 사실을 잠자리에서 아내 C가 이야기했을 때, 묘한 충동과 안타까움이 몰려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랜 친구 사이, 허물없는 내 친구 K미의 남편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아니 할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시캬 좀 잘 해줘라 시캬' 정도...
우리는 전에도 여러 차례 함께 캠핑을 다니고 온천 여행을 떠난 사이였다. 혼욕탕에서 수건 한 장을 두른 채 마주친 적도 있었고, 계곡에서 물놀이하다 서로의 몸을 민망할 만큼 가까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 친구 사이에서 허용되는 무방비함일 뿐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손을 뻗거나 그 이상의 경계를 넘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낮에는 아기자기한 공방과 풍경 좋은 산책로를 돌았다. C와 K미는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며 소녀처럼 웃었고, K미의 남편도 드물게 맨정신으로 대화에 몰입하며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기울 무렵, 우리는 숙소에 딸린 야외 온천으로 향했다.
남탕과 여탕은 어른 키보다 조금 높은 돌담과 대나무를 엮어 막아 놓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물소리와 말소리는 담 너머로 그대로 전해졌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담 너머에서 C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배 안 고파요?”
“어어, 배고파. 이제 밥 먹으러 가자.”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래 있어요? 얼른 나와요.”
“응, 그래. 금방 나갈게.”
여탕 쪽에서 K미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C가 무언가를 속삭였고, 두 여자의 웃음소리가 물결을 넘어왔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는 주문해둔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각종 회와 구이, 따뜻한 국물 요리 사이로 사케와 맥주, 양주가 빼곡하게 놓였다. 목욕을 마치고 난 뒤라 모두의 얼굴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우리 오랜만의 여행을 위해서 잔 부딪치자고! 마셔, 마셔!”
K미의 남편이 가장 먼저 잔을 들었다.
술자리가 시작되자 C는 몇 차례 K미 남편과 K미 사이를 이어보려 했다.
“이 회 K미가 좋아하잖아요. 당신이 좀 챙겨줘요.”
C가 접시를 밀어주자 그는 회 한 점을 집어 아내의 앞접시에 놓았다. K미는 잠시 남편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C의 얼굴이 환해졌다.
“거봐. 이렇게 챙겨주니까 얼마나 좋아.”
그러나 K미의 남편은 아내의 표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자신의 잔부터 채웠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서너 잔으로 늘어났다. C가 처음 몇 번 술을 따라준 뒤에는 그가 아예 병을 자기 곁으로 가져다 놓고 빈 잔을 거듭 채웠다.
“그 사람 술 너무 많이 마시게 두지 마. 한번 취하면 누가 업어 가도 몰라.”
K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늘은 운전할 일도 없잖아. 그래도 조금만 천천히 마시게 하자.”
C가 술병을 한쪽으로 밀어두려 했지만, K미의 남편은 괜찮다며 다시 끌어당겼다.
“오늘 같은 날 아니면 언제 마음 놓고 마셔.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K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목욕 후의 열기와 술기운이 겹치면서 분위기는 빠르게 느슨해졌다. 처음에는 단정하게 앉아 있던 자세가 조금씩 흐트러졌고, 서로의 옷깃과 소매도 편한 모양으로 풀어졌다.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서로의 잔과 접시를 챙기는 손길도 한결 스스럼없어졌다.
K미는 내 앞에 놓인 접시가 비면 말없이 음식을 덜어주었다.
“○○ 씨도 좀 먹어요. 아까부터 술만 마시잖아요.”
“나보다 본인부터 좀 먹어요. 오늘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않았잖아.”
내가 고기를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자 K미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희미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맞은편에서는 C가 느슨하게 풀어진 가슴골을 여미고 있었다. 목욕을 마친 피부에 아직 붉은 온기가 남아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K미의 남편의 눈이 가슴결을 슬쩍 파고드는 것을 흘깃 바라볼 수 있었다.
K미의 남편이 술잔을 기울이다가 불쑥 말했다.
“그런데 C씨는 피부가 참 곱네.”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예요?”
C가 민망한 듯 웃었다.
"그렇다는 거지. 뽀얀 사골 국물을 닮았는데, 붉은 대추 하나 떠 있다고 해야 할까? 딸꾹!"
"어머 어머 미쳤어"
그는 대수롭지 않은 장난이라는 듯 손을 뻗어 C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C의 웃음이 순간 굳었다. 곧바로 손을 빼면서 먼저 K미를 바라보고, 뒤이어 내 눈치를 살폈다.
K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만 조금 전과 달라져 있었다. 분노라기보다 오래 참고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금이 간 표정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앉은채 궁둥이를 슬쩍 일으켜, 내 곁으로 옮겨 앉았다. 어깨가 스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렇게 C가 좋으면…… 오늘 남편 바꿀까?”
식탁 위의 소리가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K미 자신도 방금 내뱉은 말에 놀란 듯했다. 입술 끝에 어색한 웃음을 걸더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술잔을 들어 보였다.
우리는 그것을 건배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는지도 몰랐다.
하나둘 술잔이 올라갔다.
그때 C가 K미를 바라보았다.
말려야 할지, 웃어넘겨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처럼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 친구의 얼굴을 살피고, 나를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C는 천천히 잔을 들어 올렸다.
“그래. 바꿔.”
다시 정적이 흘렀다.
K미의 남편이 C와 자기 아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금부터는 C씨가 내 마누라인가?”
나는 입에 머금었던 술을 그대로 뿜고 말았다.
당황한 내 모습에 모두 웃음이 한꺼번에 터졌다. C는 휴지로 식탁을 닦으며 나를 타박했고, K미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였다. K미의 남편은 자신의 농담이 대단히 성공했다는 듯 손뼉까지 치며 웃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크게 웃었고, 누군가는 웃음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술잔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묘하게도 각자의 파트너가 바뀌어 있음을 직시해야 했다.
더 이상 그 말을 다시 꺼낸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없었던 말이 된 것도 아니었다.
몇 순배가 더 돌자 K미의 남편은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에 팔을 괸 채 꾸벅꾸벅 졸더니, 끝내 누가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K미, 너 요즘도 야근 많아? 얼굴이 너무 축났어. 이것 좀 먹어.”
C가 걱정스러운 듯 음식을 집어주자 K미는 씁쓸하게 웃었다.
“말도 마. 팀 프로젝트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회사에서는 서류 보느라 눈이 빠지고, 집에 가면…….”
말끝을 흐린 K미의 시선이 옆에서 꾸벅거리는 남편을 향했다.
조금 전 자신의 친구에게는 피부가 곱다고 말하며 손까지 뻗었던 남자였다. 그러나 정작 아내가 자리를 옮겨 다른 남자의 곁에 앉았을 때는, 질투도 관심도 드러내지 않은 채 술잔만 비웠다.
K미는 한동안 남편을 바라보다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 눈에는 분노를 넘어선 지독한 권태와 애처로운 허기가 담겨 있었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온기를 나눈 기억은 이제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멀어져 있었다.
남편에게 자신은 더 이상 밤마다 안고 싶은 여자가 아니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같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잠드는 생활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반면 조금 전 내 곁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느껴졌던 짧은 긴장과, C가 “그래, 바꿔”라고 대답하기 전 흘렀던 침묵은 아직 식탁 위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위기: 깊어가는 밤, 그리고 혼욕탕으로 향하는 발걸음
밤이 깊어지자 술자리는 흐지부지 끝이 났다.
누군가 마무리를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K미의 남편이 식탁에 팔을 괸 채 완전히 고개를 떨구고, 비워진 접시 사이로 대화가 하나둘 끊기면서 자연스럽게 끝난 것뿐이었다.
거실에는 먹다 남은 회와 식어버린 국물, 반쯤 비워진 술병이 뒤엉켜 있었다. 엎어진 잔 주변은 끈적한 술로 번들거렸고, 공기에는 음식 냄새와 사케 향, 목욕을 마친 네 사람의 체온이 무겁게 섞여 있었다.
“당신은 먼저 이 사람 좀 눕혀줘요.”
C가 K미의 남편을 가리켰다.
나는 그의 팔을 내 어깨에 걸쳤다. K미도 반대편에서 남편의 허리를 받쳤다. 술에 취해 힘이 완전히 빠진 몸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여보, 정신 좀 차려봐.”
K미가 남편의 얼굴을 두어 번 살폈지만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중얼거렸다.
"아휴... 이이가... 오늘 따라 왜이래... 정말..."
우리는 그를 거의 끌다시피 방으로 옮겼다. 내가 미리 깔아둔 이불 위에 눕히는 순간, 남편의 체중이 쏠리며, 옆에서 몸을 숙이던 K미의 유카타 앞섶이 활짝 벌어졌다.
목욕 후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뽀얀 살결이 옷깃 사이로 두 젖가슴이 보름달 마냥 훤하게 드러났다.
"이이가 정말... "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장면은 불과 한순간이었지만,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인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눈에 남았다. 아니 그전 혼욕탕에서 이미 봤었다. 육덕진 몸매의 커다란 젖가슴 그리고 팽팽하게 몽우리져 오똑하던 유두와 잘록한 허리아래 풍만하던 엉덩이와 그 사이에 자리잡은 앙증맞은 검은 음모를... 봤었다.
남자라면 한번 안아보고 싶은 그런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몸, 몇번을 봤지만 그때마다 솟구치는 내 자지를 아내가 물속에서 움켜쥐고는 음탕하게 나를 봤었던 그때의 시간들...
K미는 흐트러진 남편의 다리를 이불 안으로 밀어 넣고 한동안 그 얼굴을 자신의 남편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을 드러낸 옷깃을 살짝 여민채..., 조금 전 C의 손목을 잡으며 웃던 사람과,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코를 골기 시작한 사람이 같은 남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듯했다.
“됐어요. 이제 우리가 정리할게요.”
거실에서 K미의 엉덩이 쪽을 바라보던, C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을 나온 나는 우리 쪽 방에 이불을 폈다. 펜션은 방 두 개와 작은 거실, 조그마한 부엌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구조였다. 방문에는 얇은 일본식 창호지가 덧대어져 있어 조금만 소리를 내도 옆방과 거실로 새어 나갈 것 같았다.
내가 잠자리를 마련하는 동안 C와 K미는 거실에 남아 술상을 정리했다.
접시가 포개지는 소리와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두 여자는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가끔 한쪽이 무엇인가 건네면 다른 쪽이 짧게 웃었고, 다시 그릇 부딪히는 소리만 이어졌다.
그러다 거실에서 갑자기 작은 웃음이 터졌다.
“왜?” K미의 목소리였다.
“아니, 그냥.” C가 대답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참듯 킥킥거렸다. 무엇이 우스운지 설명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웃음은 금방 잦아들었지만, 술자리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어떤 문장이 아직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듯했다.
‘오늘 남편 바꿀까?’
나는 이불 위에 앉아 혼자 피식 웃었다.
장난이었을 것이다. 술이 조금 과했고, K미가 남편에게 화가 나서 홧김에 던진 말일 뿐이었다. C의 “그래, 바꿔”라는 대답도 친구의 농담을 받아준 것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웃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조금 전 옷깃 사이로 스쳤던 K미의 뽀얀 살결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지우려 할수록 영상은 더 또렷해졌고, 그 위로 술자리에서 내 곁으로 자리를 옮겨 앉던 모습이 겹쳐졌다.
“뭘 그렇게 혼자 실실대고 있어요?”
방문이 열리며 C가 들어왔다.
나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냥.”
“그냥?” C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가왔다. 내 얼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는,
“그냥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이불 위에 한쪽 무릎을 올리고 내 앞에 앉았다. 사타구니 안쪽, 하얀 팬티스 슬쩍 보인다. 내 눈이 사타구니를 쫒을때, 아는지 모르는지, 유카타를 여미는 것인지 더 벌리는 것인지, 끝자락을 잡고 몇번을 씨름하더니,
내 뺨을 짚는 손이 서늘했다. 설거지를 찬물로 했나보다. 뜨거워진 얼굴에 닿은 차가운 감촉 때문에 순간 어깨가 움찔했다.
“무슨 생각했는지 말해봐요.” C는 내 표정을 가만히 살피더니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아무 생각도 안 했어.”
“수상한데.”
밖에서 방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C와 나는 동시에 말없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K미가 화장실을 오가는 모양이었다. 나무 바닥을 밟는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우리 방문 앞을 지나갔다가 잠시 멈춘 듯했다.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곧 다시 발소리가 이어지고, 맞은편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 뒤로는 K미 남편의 무거운 코골이만 얇은 벽을 넘어왔다.
“이제 조용해졌네.” C가 내게서 시선을 거두며 작게 말했다.
그 말이 단순히 바깥이 조용해졌다는 뜻인지, 다른 무언가를 확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C의 차가운 손이 다시 내 목덜미를 감쌌다. 나는 그녀를 끌어당겼고, 두 사람 사이에 남아 있던 웃음기는 곧 따뜻한 숨결 속으로 사라졌다.
낮 동안의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니면 술기운 때문인지 C의 반응은 평소보다 빨랐다. 입술이 닿자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렸고, 손끝이 내 등줄기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처음에는 서로 숨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움직였다. 얇은 창호지 너머로 소리가 새어나갈까 두려워, C는 이불 속으로 얼굴을 파묻고 신음을 삼켰다. 그러나 내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깊숙이 파고들자, 억누르던 숨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으음…… 조금만…… 천천히…… 좋아.... 깊어... 흑...” 낮은 신음이 목구멍에서 새어나왔다.
나는 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이불이 출렁일 때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내 가슴에 부딪히고, 땀에 젖은 피부끼리 미끄러지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C는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이불을 쥐어짜며 어떻게든 소리를 가두려 애썼다.
하지만 절정에 가까워질수록 그 억누름은 한계에 부딪혔다.
내가 허리를 세게 밀어 넣으며 그녀의 가장 깊은 곳을 반복해서 자극하자, C의 몸이 활처럼 휘어올랐다.
“아…… 안 돼, 나…… 지금……!”
“헛... 끄윽... 음... 악... 몰라... 히이이익~!“
짧은 비명이 이불 사이로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얇은 창호지를 뚫고 복도로, 그리고 옆방까지 스며들었을 것이다. 순간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키려 했지만, 이미 한 번 터진 소리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허리를 떨며 절정에 다다르는 동안, 그녀는 내 이름을 낮게 부르며 계속해서 작은 신음들을 흘려보냈다.
거의 사십 분 가까이 이어진 행위가 끝난 뒤, 우리는 녹초가 되어 이불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방 안에는 아직 서로의 거친 숨소리와, 땀에 젖은 피부의 온기만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문밖에서 아주 미세하게 뒤척이는 듯한 소리가 스며들었다.
뭔가 스치는 가벼운 바스락거림, 그리고 누군가가 숨을 참았다가 길게 내쉬는 한숨이…… 창호지 너머로 조용히 흘러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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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의 밤은 유난히 고요했다. 우리가 몰아쉬는 거친 숨만 빼고...
멀리서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와, 지붕 끝에 맺힌 물방울이 처마 아래 돌 위로 떨어지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그 고요 속에서는 방 안의 작은 움직임조차 지나치게 크게 느껴졌다. 얇은 창호지 문 너머로 우리의 숨소리와 이불 스치는 소리가 얼마나 또렷하게 흘러나갔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복도에서 아주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방문 앞을 지나다가 걸음을 멈춘 듯했다.
나무 바닥이 낮게 울리고, 옷자락이 벽에 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어 숨을 참았다가 길게 내쉬는 희미한 한숨이 창호지 너머에서 흘러왔다.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C도 그 기척을 들은 듯했지만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입가에는 조금 전까지 없었던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치 밖에 누가 있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문밖에서 일부러 인기척을 알리려는 듯 작은 헛기침이 들렸다.
“흠흠…….”
C가 이불을 끌어당기며 상체를 조금 일으켰다. 창호지 너머에서 K미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C야…… 아까 그 말, 정말이야?” 방 안의 공기가 순간 달라졌다.
C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한번 바라본 뒤, 시선을 문 쪽으로 옮겼다.
“술자리에서 한 말 말이야?”
“응…….” 짧은 대답 뒤로 다시 침묵이 흘렀다.
C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이불 끝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낮게 대답했다.
“그걸 왜 지금 나한테 물어?”
“그냥…… 확인하고 싶어서.”
“나도 몰라. 취해서 한 말이잖아.” 거절도 허락도 아닌 대답이었다.
문밖에서는 한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K미가 그대로 서 있는지, 이미 돌아섰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가 힘없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 좀 쐬고 올게. 온천탕에 잠깐 다녀오려고.”
“지금 이 시간에?”
“잠도 안 오고…… 머리도 좀 식힐 겸.” C는 다시 한번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 오래 있지는 마.”
“응.”
발소리가 천천히 멀어졌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렸다가 조심스럽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 펜션 안에는 K미 남편의 무거운 코골이만 남았다.
C는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어둠 속에서도 얼굴이 붉어진 것이 보였다.
“다 들었겠지?”
“좀 참으라니까…… 꼭 그렇게 티를 내야 했어?” 그녀가 내 허벅지를 꼬집으며 작게 타박했다.
“나만 그랬나? 그리고 언제? 언제 그랬어? 쟈기가 먼저 손댔잔아”
“시끄러.” C가 민망한 듯 내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하지만 입가에 남은 웃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무슨 뜻이었어?”
내가 묻자 그녀의 손이 잠깐 멈췄다.
“뭐가?”
“술자리에서 남편 바꾸자는 말. 방금 K미도 그걸 물어본 거잖아.”
“그냥 술 취한 사람들끼리 한 농담이지.” C는 대답하지 않은 채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런데 왜 확실하게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어?”
“내가 무슨 말을 했어도 지금은 이상하게 들렸을걸.”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러나 K미가 떠난 뒤에도 C는 잠들지 못했다. 몇 번이나 자세를 바꾸었고, 현관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날 때마다 눈을 떴다. 장난스러웠던 표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졌고, 그 자리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조금씩 번져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K미는 돌아오지 않았고, 맞은편 방에서는 여전히 남편의 코골이만 일정하게 이어졌다.
C가 마침내 상체를 일으켰다.
“너무 늦는 것 같은데.”
“조금 있으면 오겠지.”
“혼자 갔잖아. 술도 마셨고.”
나는 가만히 누워 있었지만 C는 계속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가서 좀 봐줘.”
“내가?”
“그럼 저 사람을 깨워서 보내?”
맞은편 방에서 코골이가 대답처럼 들려왔다.
C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 시선을 피한 채 덧붙였다.
“아까부터 당신도 신경 쓰였잖아.” 그 말이 걱정해서 찾아보라는 뜻인지, 다른 무언가를 떠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은 괜찮아?” 내 질문에 C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뭐가?”
“내가 지금 K미를 찾으러 가는 거.” 그녀는 이불 끝을 끌어당기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괜찮고 말고 할 일이 아니잖아. 친구가 안 돌아오는데.”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목소리에 섞인 미세한 떨림은 그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둘이 미리 무슨 이야기라도 한 거야?”
“없어.” 짧은 대답이었다. C는 나를 한번 올려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피했다.
“만나면 아무것도 묻지 말고, 일단 데리고 들어와. 지금은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아.” 그녀는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 나를 발끝으로 가볍게 밀었다.
“빨리 다녀와.”
"나가? 내가? 진짜?" 나는 가운을 걸치고 방문 앞에 섰다.
"죽을래?"
문을 열기 전 아내를 돌아보며 간청하듯 말했지만, C는 이불을 끌어올린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뽀얀 다리 한쪽만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고, 얼굴은 어둠 속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또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그럼 다녀올게.” C는 대답 대신 나를 외면한 채 눈을 감았다.
그러나 내가 방문을 닫는 순간까지도, 그녀가 잠들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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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닫고 나오자 방 안에서 느꼈던 온기가 거짓말처럼 끊겼다.
펜션 밖은 생각보다 훨씬 어두웠다.
현관등이 비추는 좁은 영역을 벗어나자 깊은 계곡과 산자락이 사방에서 검은 벽처럼 다가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능선 사이로 가로등 몇 개가 드문드문 켜져 있었지만, 빛은 주변을 밝히기보다 오히려 그 너머의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나무 데크와 벤치, 작은 산책로가 흐릿한 그림자로 이어졌다. 멀리 계곡물이 바위를 타고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이름 모를 벌레 울음과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나는 가운 자락을 여미며 주위를 살폈다.
“K미 씨?” 낮게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혹시 술기운에 발을 헛디딘 것은 아닐까. 계곡 쪽으로 내려갔다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조금 전까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묘한 기대가 어둠 앞에서 빠르게 염려로 바뀌었다.
산책로 초입까지 걸어가 벤치 주변을 살폈다. 사람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검은 형체는 가까이 다가가자 낮은 관목으로 드러났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뒤늦게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어디로 간 거지…….’
K미는 분명 온천탕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곧장 대욕장으로 향하지 않고 주변부터 살핀 것은 나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정말 그녀가 걱정돼서였을까.
아니면 대욕장에 가면 술자리에서 던졌던 그 말의 다음 장면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입 밖에 내기 어려운 기대 때문이었을까.
‘오늘 남편 바꿀까?’
K미가 내 곁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뒤이어 잔을 들어 올리던 C의 얼굴과 낮은 목소리가 겹쳐졌다.
‘그래. 바꿔.’
곧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고, 그 이야기는 취중 농담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밖에서 K미가 다시 그 말을 확인했을 때 C는 분명하게 부정하지 않았다.
‘나도 몰라. 취해서 한 말이잖아.’
허락도 거절도 아닌 대답.
그리고 나를 내보내며 했던 말.
‘아까부터 당신도 신경 쓰였잖아.’ 나는 걸음을 멈췄다.
혹시 C와 K미 사이에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은 아닐까. C가 정말 친구를 걱정해서 나를 보낸 것인지, 아니면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어떤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K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녀를 발견했을 때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지 궁금해하는 마음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아쉬움을 느낄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대욕장으로 향하는 길은 숲 안쪽으로 완만하게 굽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구간에 들어서자,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두어 번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내가 밟은 데크의 삐걱거림뿐이었다.
대욕장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입구의 작은 조명이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낮에는 남탕과 여탕을 구분하던 표지판 옆에 새로운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늦은 시각부터는 노천탕이 딸린 대욕장을 혼욕탕으로 함께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안내문을 읽는 순간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었다.
그제야 K미가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출발할 때부터 혼욕 운영 시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곳에 와서 우연히 알게 된 것일까.
‘만약 안에 있다면…….’
나는 어떤 말로 그녀를 불러야 할지 생각했다.
C가 걱정해서 찾으러 왔다고 말하면 될 일이었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술자리에서 내 곁으로 옮겨 앉던 K미.
문밖에서 C에게 “정말이야?”라고 묻던 목소리.
그리고 조금 전 이불을 깔아주다 우연히 보았던 뽀얀 살결.
나는 그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에 온 목적은 친구를 찾아 안전하게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됐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도 대욕장 문 앞에서 한동안 손잡이를 잡지 못했다.
인기척이 없는 탈의장을 지나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 대욕장은 텅 비어 있었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넓은 공간 안에서 낮게 울렸다. 바닥에는 아직 누군가 지나간 듯 젖은 발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것은 노천탕으로 이어지는 나무 문 앞에서 사라졌다.
“K미 씨?”
다시 한번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문틈 너머에서 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바람이나 온천수 유입구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자 일정하지 않은 물소리 사이로 누군가 숨을 참았다가 내쉬는 듯한 기척이 섞여 있었다.
한 사람의 움직임 같지는 않았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천천히 유리창 쪽으로 다가갔다. 손바닥에 맺힌 땀이 차갑게 식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과, 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유리창에는 온천의 김이 희뿌옇게 서려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아주 작은 부분을 닦아냈다.
처음에는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달빛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내 김 사이에서 사람의 어깨가 나타났고, 그 옆으로 또 다른 검은 실루엣이 겹쳐졌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도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 희미하게 드러난 여자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K미였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웃고 여행하며 서로의 집을 드나들었던 사람. 늘 야근에 지쳐 있었고, 조금 전까지 남편의 무관심 앞에서 씁쓸한 미소를 짓던 바로 그 여자였다.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과 드러난 어깨가 달빛 아래에서 낯설게 빛나고 있었다. 양옆에는 처음 보는 두 남자의 실루엣이 가까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먼저 치밀어 오른 것은 걱정이었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닌지,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K미는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걱정은 충격으로, 충격은 설명하기 어려운 혼란으로 바뀌었다.
눈을 비볐다.
아니, 다시 눈을 깜박였다.
잘못 본 것이라 믿고 싶었지만 달빛이 수면을 스칠 때마다 세 사람의 모습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아까부터 당신도 신경 쓰였잖아.’ C의 목소리가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그 말이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고 한 것이었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우연히 맞춰진 조각들이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순서였던 것처럼 이어지기 시작했다.
불안과 염려, 충격과 질투.
그리고 그 모든 감정 아래에서 고개를 드는, 스스로에게조차 인정하기 싫은 기묘한 기대.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유리창 앞에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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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과 김이 뒤섞인 수면 위로 세 사람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한 남자가 K미에게 다가가려 하자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남자는 즉시 걸음을 멈췄다. 뻗으려던 손도 거두었다.
“불편하면 나갈게요.”
그 말에 K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가달라고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수건을 두르고 숙소로 돌아가면, 이 밤은 그저 술에 취해 잠시 바람을 쐬었던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서지 않았다.
수면 위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손만 천천히 풀었다. 입술이 몇 번 움직였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남자도 재촉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K미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제가 그만하라고 하면…… 바로 멈춰요.”
“그래요.”
“두 사람 다요.”
조금 떨어져 있던 다른 남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K미는 떨리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도 선뜻 다가가지는 못했다. 한 발을 내디뎠다가 멈추고, 다시 숙소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 표정에는 두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에게 외면당했던 수많은 밤과 술자리에서 친구의 손목을 붙잡던 그의 웃음, 홧김에 내뱉었던 ‘남편 바꿀까?’라는 말이 차례로 스쳐 가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두 남자의 시선.
그 시선이 부끄러웠다. 당장 몸을 감추고 싶을 만큼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오래 기다려온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K미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남자의 손목을 잡았지만 곧바로 끌어당기지는 못했다. 손끝에 힘을 주었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뜬 뒤에야 스스로 그 손을 가까이 이끌었다.
남자의 손길이 어깨에 닿자 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괜찮아요?”
K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반응에 스스로 놀란 사람처럼 숨을 삼켰다.
잠시 후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요.”
남자는 그 이상 서두르지 않았다.
다른 남자 역시 곁으로 다가오다가 K미가 긴장하는 것을 보고 멈췄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릴 때까지 기다린 뒤 다시 의사를 물었다.
K미는 두 사람의 시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욕망이 담긴 시선이었다. 그러나 남편에게서 오랫동안 받지 못했던 바로 그 시선이기도 했다. 누군가 자신을 여자로 바라본다는 사실이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텅 빈 곳을 채우듯 깊숙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가리려다 손을 멈췄다.
가릴 것인지, 보여줄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손이 수면 위에서 가늘게 떨렸다. 결국 손을 완전히 내리지도, 다시 몸을 감싸지도 못했다.
한 남자가 얼굴을 가까이하자 K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즉시 물러났다.
“미안해요.”
그 짧은 사과 뒤에 다시 거리가 생겼다.
K미는 옆으로 돌린 얼굴을 그대로 둔 채 숨을 골랐다. 거절했다는 안도와, 상대가 정말 물러났다는 뜻밖의 아쉬움이 동시에 떠오른 듯한 표정이었다.
몇 초가 흘렀다.
이번에는 K미가 먼저 남자의 팔뚝을 붙잡았다.
입맞춤을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떠나지 말라는 뜻처럼 보였다.
“잠깐만…… 이대로 있어요.”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K미는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왜 이곳에 남아 있는지 이해하려는 듯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다른 남자도 손을 뻗지 않은 채 기다렸다.
그 침묵 속에서 K미의 호흡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러다 문득 두 사람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에게 머물러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감겨 있던 눈꺼풀이 다시 떨렸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끄러움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 아래에는 자신이 아직 누군가의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은 갈증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K미는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남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순간, 수면이 작게 흔들렸다. 다른 남자가 다시 괜찮은지 묻자 그녀는 숨을 삼키며 대답했다.
“네. 하지만…… 계속 물어봐 줘요.”
그 말은 두 남자에게만 하는 부탁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언제 두려움이 욕망을 앞설지 K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매 순간 선택할 기회가 필요했던 것이다.
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도 K미는 몇 번이나 움츠러들었고, 그때마다 움직임은 멈췄다. 다시 이어질 때는 언제나 그녀가 먼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갈등 없이 일탈을 즐기는 얼굴도 아니었다.
돌아가야 한다는 이성과, 단 한 번이라도 온전히 여자로 바라봐지기를 바라는 갈망 사이에서 매 순간 흔들리면서도, 결국 그 자리에 남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유리창 너머에서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충격보다 먼저 든 감정은 안도였다. 적어도 그녀가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안도는 곧 더 복잡한 감정으로 변했다.
그녀가 원해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견디기 어려웠다.
남편에게도, C에게도, 나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갈증이 낯선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오래도록 눌러온 욕망과 수치심, 두려움이 달빛 아래 한꺼번에 풀려나며 서로 뒤엉켰다.
그 광경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나는 눈앞의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어 몸이 굳었다.
절정: 도취의 끝에서 돌아온 이성
달빛과 수증기 속에서 세 사람의 움직임은 서로 얽혀 있었다.
K미는 두 남자 사이에 서 있었다. 한 사람은 그녀의 앞에서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고, 다른 한 사람은 뒤에서 허리와 어깨를 감싸듯 받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접촉 하나하나에 놀라 몸을 움츠리던 K미도 어느 순간부터 경계와 갈망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했다. 멈추려는 듯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가도 손을 놓지 않았고, 고개를 돌리면서도 완전히 거리를 벌리지는 않았다.
“괜찮아요?”
남자가 다시 물었다.
K미는 눈을 감은 채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천천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리에는 이미 처음의 망설임과는 다른 떨림이 섞여 있었다.
두 남자는 그녀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한 사람의 손길이 어깨와 쇄골을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였고, 다른 사람은 그녀가 물러서지 않도록 붙잡기보다 흔들리는 몸을 받쳐주듯 허리를 감쌌다.
K미의 호흡이 조금씩 짧아졌다.
처음에는 입술을 다문 채 숨을 억눌렀다. 그러나 감각이 겹쳐질수록 목구멍 깊은 곳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리가 날 때마다 그녀는 스스로 놀란 듯 입술을 깨물었지만, 한번 흐트러진 호흡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잠깐…….”
두 남자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K미는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만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받치고 있던 남자의 손등 위에 손을 포갰다. 조금 전보다 가까이 다가가며,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그 짧은 한마디를 경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달덩이 같은 풍만한 둥근 두 언덕을 살며시 쥐며, 젖꼭지를 비비던 한남자, 그리고 K의 사타구니 안쪽에 자리잡은 손이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또다른 남자, 그들의 입에서 K의 몸을 칭찬하는 말들이 쏟아진다.
물결은 조금 더 거칠게 흔들렸고, 수면 위로 솟아오른 김이 세 사람의 모습을 삼켰다가 다시 드러냈다. K미는 더 이상 자신의 반응을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몸은 감각을 따라 움직였고, 가늘게 억눌렀던 신음 소리도 점차 길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남편도, C도,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도 모두 멀어진 듯했다.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친구도 아닌 채 오직 자신을 향한 욕망만을 느끼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다. 오랫동안 말라 있던 갈증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수치심과 두려움마저 흥분 속에 뒤섞였다.
그녀의 얼굴에서 망설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성이 감각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 너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십 년 넘게 가족처럼 지낸 사람이었다. 아내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함께 웃고 여행하며 서로의 일상을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그녀가 강요당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그런데도 그대로 돌아설 수는 없었다.
걱정인지 질투인지, 혹은 설명하기 싫은 다른 감정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K없이 들어갔을 때, 아내가 보여줄 질타 때문이었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문을 열지 않으면 이 장면을 평생 숨어서 지켜본 사람으로 남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망설인 끝에 문을 밀었다.
나무 문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노천탕의 물소리를 갈랐다.
세 사람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조금 전까지 이어지던 숨소리도, 물결도, 모든 시간이 동시에 얼어붙은 듯했다.
두 남자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는 욕정이 가득한 표정에서, 놀람과 경계가 빠르게 번졌다. 한 사람은 즉시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고, 다른 사람도 K미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두 손을 보이듯 들어 올렸다.
그 사이에서 K미가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도취의 흔적이 남아 있던 눈동자가 몇 번 흔들렸다. 달빛 속에 선 내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눈이 크게 열렸다.
“○○ 씨……?” 목소리가 떨리며 갈라졌다.
그 한마디와 동시에 조금 전까지 그녀를 감싸고 있던 흥분이 급격히 식어갔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있었는지,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감각에 밀려 사라졌던 사실들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K미는 반사적으로 두 팔로 몸을 감쌌고 그들에게서 떨어졌다.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의 동작이었다.
몇 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사이에 깊은 단절이 생긴 듯했다. 조금 전까지는 스스로 허락하고 선택했던 행동들이, 이성이 돌아오자 낯선 누군가의 기억처럼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남자들을 바라보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남편이 잠든 방과 C의 얼굴, 술자리에서 던진 농담이 뒤늦게 머릿속을 휩쓰는 듯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찾는 눈빛이 잠시 떠올랐지만, 곧 힘없이 무너졌다.
두 남자도 상황이 바뀌었음을 알아차렸다.
“아는 분이에요?”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K미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만 움직일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K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두 분은 이제 나가주시죠.” 명령이라기보다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한 말이었다.
남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불쾌함과 당혹감이 스쳤지만, 조금 전 K미가 나를 부른 목소리에서 관계를 짐작한 듯 더 따지지 않았다.
한 사람이 바닥의 타월을 집으며 K미에게 물었다.
“괜찮겠어요?”
그녀는 여전히 나를 바라본 채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서둘러 몸을 가리고 탈의장 쪽으로 향했다. 한 명이 내 옆을 지나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결국 입을 다문 채 뒤를 따랐다.
문이 닫혔다.
멀어지는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노천탕에는 물이 흘러드는 소리만 남았다.
K미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휩쓸었던 감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돌이킬 수 없다는 자각과, 자신이 직접 내린 선택을 이제 와서 누구에게도 떠넘길 수 없다는 두려움뿐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이 C의 손목을 잡기 전이었을까.
‘남편 바꿀까?’라는 말을 내뱉기 전이었을까.
C에게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묻기 전이었을까.
아니면 두 남자에게 처음 고개를 끄덕이기 직전이었을까.
잘못은 어느 한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작은 상처와 오래된 갈증, 술기운에 흘린 말과 스스로 허락한 선택들이 차례로 겹치며 여기까지 흘러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이해한다고 해서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K미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 씨…….” 그녀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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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피어오르는 수면 위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K미는 두 팔로 몸을 감싼 채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수면 위에 작은 파문을 만들었다. 파문이 사라질 때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이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괜찮아요?” 내가 먼저 묻자 그녀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 씨…… 방금 본 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K미의 시선이 내 얼굴을 피해 어두운 산자락으로 흘렀다.
“저는…… 당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뜻밖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방에서 나오기 전에 C에게 물었어요. 술자리에서 한 말이 정말이냐고.”
문밖에서 들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까 그 말, 정말이야?’
그리고 한참 뒤에야 이어졌던 C의 모호한 대답.
‘나도 몰라. 취해서 한 말이잖아.’
“K미 씨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거예요?” 그녀는 두 손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모르겠어요. 허락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거절도 아닌 것 같았어요. 혹시 당신이 따라올까 봐 기다렸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까…… 제가 혼자 이상한 기대를 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끝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래서 여기로 왔어요. 아무도 없을 줄 알았고, 물에 몸을 담그면 정신이 좀 들 것 같았어요.”
“그 남자들은요?”
K미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멀리서 온천수가 떨어지는 소리만 일정하게 이어졌다. 그녀는 변명할 말을 찾다가 결국 포기한 사람처럼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나가려고 했어요. 그 사람들이 가까이 왔을 때도 물러났고요. 그러자 바로 멈추고 제 의사를 물었어요.”
“그때 나올 수도 있었던 거군요.”
“네.” 짧은 대답이었다.
“아무도 저를 붙잡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남기로 했어요.” K미는 눈을 감았다.
“그 사람들이 저를 보고 예쁘다고 했어요.” 그 한마디 뒤로 긴 침묵이 따랐다.
남편이 술에 취해 등을 돌린 채 잠들었던 수많은 밤과, 아무리 가까이 누워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던 시간이 그 침묵 안에 겹쳐지는 듯했다.
“몇 년 만에 처음 들었어요. 누군가가 저를 여자로 바라본다는 말을.” 그녀는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였다.
“처음에는 아주 조금만 허락하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모를 거라고…… 스스로 핑계를 댔어요.”
“그런데 멈추지 못한 거군요.”
K미는 입술을 깨문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였다고 변명하지 않을게요. 그 사람들은 제가 멈추라고 할 때마다 멈췄어요. 다시 손을 내민 것도 저였어요.” 그녀가 떨리는 숨을 삼켰다.
“제가 흔들렸고, 제가 잘못 선택했어요. 오늘은 모든 게 엉켜버렸어요. 남편에게 쌓였던 원망도, C가 했던 말도, 제가 당신에게 품었던 기대도…… 전부요.”
잠시 후 그녀가 힘겹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발 남편과 C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C의 모호한 대답과 K미의 기다림, 그리고 이곳에서 벌어진 일까지 서로 무관해 보였던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그림이 누군가의 계획으로 시작된 것인지, 각자의 오해가 우연히 맞물린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알겠어요. 내가 먼저 말하지는 않을게요.”
K미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고마워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야 해요.”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흔들렸다.
“남편이 몰라봤다고 해서 K미 씨가 매력 없는 사람이었던 건 아니에요.”
K미는 숨을 멈춘 듯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그 남자들이 당신의 아름다운 몸을 처음 발견한 것도 아니고요. 아마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을 거예요. 다들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 역시도...”
“○○ 씨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수치심에 움츠러들었던 그녀의 눈에 다시 낯선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위로를 원하는 사람의 눈빛인지, 자신의 욕망을 다시 확인받고 싶은 사람의 눈빛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대답 했는데... 그 대답을 지금 다시 들어도 괜찮겠어요?”
내가 묻자 K미는 시선을 피했다.
“말하지 마세요.” 분명한 거절이었다. 나는 더 다가가지 않았다.
“알겠어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뒤로 물러나려 하자, 이번에는 K미가 내 가운 소매를 붙잡았다.
“가지는 말고요.”
나는 멈춰 섰다.
“말하지도 말고…… 잠깐만 여기 있어 주세요.” 그녀는 잡은 소매를 놓지 않았다. 손끝의 떨림이 천을 통해 전해졌다.
“안아줘도 돼요?”
내 질문에 K미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한 번 눈을 감았다 뜨고, 숙소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조금만 더 누군가의 온기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얼굴 위에서 번갈아 스쳤다.
마침내 그녀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요.”
나는 서두르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K미는 처음에는 몸을 굳힌 채 내 품에 머물렀다. 이내 이마를 내 어깨에 기대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안도의 한숨 같기도 했고, 다시 경계를 넘기 직전의 떨림 같기도 했다.
“이제 들어갈까요?” 내가 물었다.
K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운을 붙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 침묵은 허락도 거절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K미가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두려움과 후회가 남아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조금 전과 다른 갈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제가 먼저 말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알겠어요.”
그녀는 내 대답을 확인하듯 한동안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짧막한 입맞춤 그리고, 내 입술에서 떨어져 나간 그녀는 내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그리곤 차분히 이어지는 그녀의 말...
“정말 모든게 순간이었어요. 정말 억지였다고 말하지 않을게요. 제가 흔들렸고, 제가 잘못 선택했어요.”
턱선을 타고 떨어진 물방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오늘은 모든 게 엉켜버렸어요. C가 했던 말도, 제가 품었던 기대도…… 전부요.”
잠시 후 그녀가 힘겹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발 남편과 C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녀는 말을 마치며 더 가까이 다가와, 떨리는 큰 가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물방울이 턱선을 타고 흘러내렸고, 그녀의 숨소리는 여전히 가빴다.
나는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들이 말한 대로 당신은 정말 매력적인 몸을 가지고 있어요. 남편이 그걸 몰라준 게 바보지.”
내 낮고 진득한 목소리에 K미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그럼 둘이 날 돌려 먹으려 했다는 거네요?"
“그…… 그게 꼭…… 그렇게 말씀하셔야겠어요? 저는 그냥…… 하루만 처신하라는 C의 말을 믿었을 뿐이에요. 정말이에요……”
그녀의 어깨를 살짝 감싸며 새빨개진 그녀의 귀에 바짝대고 속삭였다.
“그래서 그 남자들한테 몸을 보여준 거고?”
“아뇨…… 그게…… 너무 부끄러워서, 나갈 수가 없어서…… 제발... 그리고 그들이 ‘한 번만’이라고 했을 때, 저도…… 정말 딱 한 번만이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 씨, 제발…… 이 이상으로 말씀하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눈동자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방어하려던 그녀의 손을 천천히 잡아끌어 당겨, 가운 아래로 이미 단단하게 발기한 나의 부위를 직접 확인시켰다.
“느껴져? 네가 그렇게 애원하는데도, 내 몸이 이렇게 반응하고 있어.”
K미의 숨소리가 거칠게 곤두박질쳤다.
“헛... 이, 이러지 마요... C가 알련 어떻게요... “
"ㅋㅋ 둘이 작당을 해놓고... 무슨... 내가 성인 군자도 아니고..."
수치심과 억눌린 욕망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녀는 내 것을 손에 쥐고 아래위로 천천히, 그러나 점점 거칠게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귓가에 낮게 물었다.
조금 전 자신이 먼저 짧은 입맞춤으로 좁힌 거리를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넘어설 수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후회할 것 같으면 지금 들어가요.”
내 말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후회하고 있어요.”
“그럼 멈춰야죠.”
“그런데……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녀의 대답은 거의 숨소리에 가까웠다.
내가 다시 괜찮은지 확인하자 K미는 이번에는 말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처음보다 더 조심스럽게 내 뺨을 감싸고 짧게 입을 맞췄다.
닿았다가 곧바로 떨어지는 입맞춤이었다.
K미는 자신의 행동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물러서지는 않았다. 다시 입술이 닿았고, 두 번째 입맞춤은 처음보다 조금 길었다.
짧은 입맞춤이 간격을 두고 몇 번 더 이어졌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표정을 확인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가까워졌다가, 두려움이 고개를 들면 다시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떨어져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고, 입맞춤은 조금씩 깊어졌다.
K미의 손이 내 어깨와 등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나 역시 서두르지 않고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뒤 떨리는 알몸으로 드러난 등을 감싸 안았다가 손을 앞으로 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여기서 멈출까요?” 나는 다시 물었다.
K미는 내 어깨에 이마를 댄 채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계속 물어보면…… 제가 정신을 차릴 것 같아요.”
“정신 차리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오늘만큼은 나쁜 것 같아요.” 그녀가 힘없이 웃었다.
그 말이 끝나자 그녀가 다시 입술을 포개왔다.
이번에는 짧게 끝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갈망이 출구를 찾은 것처럼 두 사람의 호흡이 빠르게 흐트러졌다. 서로를 감싼 손길에는 망설임과 다급함이 함께 섞였다. 멈추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생각을 따를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정말 괜찮아요?” 마지막으로 묻자 K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네. 제가 선택하는 거예요. 그... 그리고... 말을 이렇게 많이 해요? 그만... 말해요!”
그 한마디 뒤로 두 사람 사이에 남아 있던 마지막 거리마저 사라졌다.
“말은 하지 말라면서, 손은 내자지를 흔들고 있네, 어쩌자는 거지? 어때요? 남편보다 크지?”
“히익... 어마... 몰라…… 네.”
“만져보니까 어때?”
“몰… 몰라요… 뜨거워요. 그리고…… 단단해서…….”
더 이상 이성은 필요 없었다. 나는 탈의실 입구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 안전한 위치로 자리를 옮기며 그녀를 바위에 손을 짚고 기대게 했다. 엉덩이를 삐죽 내밀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욕망의 불길이 휘도는 것을 보았다.
문득 탈의실 입구를 바라봤을 때, 기온 차이로 김이 피어오르는 사이로, 문 쪽에서 그림자가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 남자들이 완전히 떠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어디선가 이 광경을 관전하고 있는 것일 수도. 그 사실이 오히려 등줄기를 더 뜨겁게 만들었다.
나는 주저 없이 그녀의 잘록한 골반을 움켜쥐고 내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들어간다... K미의 보지에..."
“아아…… 안 돼, 이러면 정말 안 되는데…… 하아, 너무 깊어…….”
K미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며 나를 받아들여왔다.
남편과의 건조한 삶 속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유부녀를 정복한다는 압도적인 배덕감과 쾌감이 뇌리를 강타했다. 거친 허리짓 속에서 K미는 내 이름을 부르며 더욱 강하게 조여왔고, 나는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남편과의 섹스보다 훨씬 기분 좋지?”
그 질문에 K미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쾌감에 무너져 내린 목소리로 흐느꼈다.
“아아…… 응, 너무 좋아…… 하아아…….”
나는 그녀의 허리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 바위에 기댄 채 뒤에서 깊숙이 파고들었다. 물기가 섞인 살결이 부딪힐 때마다 찰박이는 소리가 노천탕 안에 울려 퍼졌다. K미의 등이 활처럼 휘어지고, 그녀의 안쪽이 내 것을 열렬히 조여왔다.
달빛은 수면 위에서 부서졌고, 짙은 수증기가 우리의 모습을 가렸다.
다만 K미가 몇 번이나 내 이름을 부를때 마다 질구가 옴짤거리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나는 그때마다 그녀를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탈의장 쪽에서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K미의 몸이 순간 굳었다.
내게서 떨어진 그녀가 두 팔로 몸을 감싸며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떠났던 두 남자가 입구 가까이에 다시 서 있었다. 그들은 더 다가오지 않은 채 머뭇거리며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방해하려던 건 아니고…….”
나는 대답하지 않고 K미를 바라보았다.
결정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저…… 참석 안 되면, 그냥 관전만 괜찮을까요?”
K미 역시 그들이 한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듯했다. 입술을 깨문 채 나를 보고, 다시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부끄러움 때문에 몸을 숨기면서도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했다.
“싫으면 지금 나가라고 할게요.” 내가 낮게 말하자 그녀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두 남자 역시 더 가까이 오지 않고 기다렸다.
마침내 K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 거기서 더 다가오지는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 그리고 제가 나가달라고 하면 바로 나가주세요.”
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여전히 내 피부에 밀착되며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주춤주춤 망설였다.
입술을 깨물고, 나를 올려다보고, 다시 두 남자 쪽을 흘깃 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돌리며, 바위에 손을 짚고 엉덩이를 내게 내밀었다. 마치 '이러면… 이래도… 괜찮은 거죠?'라고 묻는 듯한 자세였다.
나는 그 순간 다시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성기가 서로 마주치며 깊게 맞물리는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K미는 “하아……” 하고 짧은 신음을 흘리며 바위를 짚고 있던 양손을 움켜쥐었다.
두 남자는 천천히, 우리 옆까지 다가왔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알아 치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방관하는 것인지, 온몸으로 나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타월을 풀고, 이미 단단해진 자신들의 것을 손에 쥐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기가 남은 손이 위아래로 오가는 소리와, 우리의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였다.
나는 속도를 올리기보다,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깊게 들어갔다가, 완젼히 배냈다. 그럴수록 갈망할 대상을 찾고 있는것처럼, 흔들리며 나를 찾아 더더욱 내밀고 있는 그녀 엉덩이...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녀의 안쪽이 세게 조여왔다는 것이다. 이곳에 오기전 아내와 관계를 가졌기에 간신히 참을 수 있었지 않을까?, 또한 만약 조절 행위가 없었다면 벌써 쏟아냈을 만큼 강렬한 조임이었다. 그녀의 질구가 내 것을 뿌리까지 빨아들이듯 수축할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허리를 더 깊이 밀어 넣되, 완전히 빼내 열기를 식혀야 했다.
K미는 처음에는 고개를 숙인 채 터져나올듯한 신음을 억누른채 간헐적으로 급한 신음만 흘렸다.
그러나 점점, 간간이 옆을 흘겨보기 시작했다. 두 남자가 자신의 몸을 보며 자위하는 장면을. 그녀의 시선이 뚜렷하게 그들 쪽으로 고정되는 순간, 안쪽의 조임이 한층 더 격렬해졌다.
“하아…… ○○ 씨…… 너무… 나... 나좀... ”
“그들이 보는 거, 기분 좋지?” 나는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모르겠어요…… 아, 안 돼…… 그런데…… 하아아…….”
허리를 뒤로 빼고 다시 세게 집어넣는 동작을 반복했다.
“바른 대로 말해야 이쁜 처자지 안그래? 말해봐!“
"좋... 좋아... 하윽.. 나 몰라..."
물결이 출렁이고, K미 스스로 엉덩이를 내 치골에 강하게 부딪혔다. 난 뒤로 밀리지 않기 위해. 두 다리에 힘을 줘야 했다.
조금 떨어져 있던 두 남자의 호흡도 점점 거칠어졌다.
그들은 약속한 선을 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오거나 손을 뻗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행위가 이어질수록 K미의 안쪽이 점점 더 세게 조여왔다.
처음에는 수치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낯선 남자들 앞에서, 게다가 자신의 몸을 드러낸 채 친구의 남편의 성기가 자신의 질수를 파고들고 있는 상황이니, 당연히 몸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그런데 잠시 후, 그녀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려워하면서도,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처럼 어둠 속에 서 있는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들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K미의 호흡이 짧게 멎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욕망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남편에게서는 이미 오랫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자신을 한 명의 여자로서 노골적으로 탐하는 시선.
조금 전까지 자신을 공기처럼 대하던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빛.
그 시선이 닿는 순간,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부끄러움이 더 커진 것인지, 아니면 그 부끄러움을 밀고 올라오는 다른 감정이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기묘한 상황이 그녀 마음속 깊숙한 곳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어떤 결핍을 거칠게 흔들어 깨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숙소에는 남편이 잠들어 있었고, C는 내가 친구를 데리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로 네 사람이 같은 식탁에 앉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 모든 일은 갑자기 아주 먼 곳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을까?.
내일의 자신이 감당해야 할 후회보다, 지금 이 순간 여러 사람의 눈에 여자로 비치고 있다는 감각이 더 가까웠던 것일까?. 이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성이 바라보는 시간이 몇 년과 며칠에서 단 몇 초로 줄어든 것처럼 그녀는 한꺼풀 한꺼풀 자신을 내려놓고 있었다.
K미의 신음이 점차 높아졌다.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내가 강하게 파고들 때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었지만, 이내 다시 들어 올렸다.
게슴츠레한 눈동자, 그리고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떨려 올라오는 교성.
나는 그녀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뒤에서 허리를 밀듯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숙여진 허리, 그리고 바위를 짚고 있던 그녀의 얼굴 바로 앞에, 두 남자의 성기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숨을 몰아쉬며 자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두 남자의 자위 행위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질 벽이 경련하듯 강하게 수축했다.
뜨끈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질구와 하체가 바들바들 떨렸다.
내 것을 뿌리째 끊어낼 것처럼 조여오는 그 감각에, 나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조금만…… 더…….”
나는 허리를 마지막으로 깊이 밀어 넣으며 그녀의 자궁 입구를 자극했다.
그와 동시에 두 남자의 거친 숨이 멈칫했다.
세 사람의 사정이 거의 동시에, 그러나 순차적으로 터졌다.
나는 K미의 자궁 안쪽 깊숙이 정액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뒷머리부터 꼬리뼈까지 전류가 흐르듯 치고 내려가는 아찔한 여운이 몸을 관통하는 동안,
두 남자 역시 신음을 삼키며 사정했다.
하얀 액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K미의 얼굴과 입술, 턱선 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신음을 흘리면서도, 얼굴을 완전히 돌리거나 입을 다물지 지는 않았다.
물기와 정액이 뒤섞인 채, 노천탕 안에는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K미의 안쪽은 여전히 미세하게 경련하며 내 것을 붙잡고 있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낯선 남자들의 정액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남자는 떠나기 전 잠시 K미를 바라보았다.
“고마웠어요, 덕분에... 아쉽지만...”
K미는 두 팔로 몸을 감싼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니까 이제 가주세요.”
남자는 더 묻지 않았다. 타월을 집어 들다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 ㅎㅎ, 이거이거 저희가 엮어드린 것 맞죠?. 혹시라도 생각 있으시면, 월말 주말에 오세요. ”
“부탁드릴게요... 두 분을 다시 찾지 않을 거예요.” K미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그 말은 상대에게 하는 약속인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처럼 들렸다.
“뭐, 그러시던가~ 그럼“ 두 사람은 짧게 고개를 숙인 채 탈의장 쪽으로 사라졌다.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진 뒤에도, K미와 나는 한동안 욕탕에 몸을 누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남아 있던 하얀 흔적을 천천히 씻어 주었다.
손가락 끝으로 입술과 턱선을 따라 물기를 훔쳐내자,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자코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내, 물속에서 서로의 손가락을 가만히 엮었다.
“그만 갈까?“
“네...“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노천탕을 나와 가운을 걸칠때, 가운을 여며주었다.
생각없이 시계를 들여다 봤을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두 사람 모두 걸음을 서둘렀지만, 나무 복도에서는 최대한 소리를 죽였다. 그래도 발을 내디딜 때마다 마룻바닥이 작게 울었다.
K미는 내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서로의 팔이 몇 차례 스쳤지만, 어느 쪽도 상대를 바라보거나 손을 뻗지 않았다.
방에 가까워졌을 때 K미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나올 때까지 우렁차게 이어지던 남편의 코골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를 흘깃 올려다 보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현관문 앞에 도착해 내가 열쇠를 꺼내자, K미가 황급히 내 손목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그녀는 문에 귀를 가까이 댔다.
멀뚱히 바라보는 내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풀벌레 소리만... 그런데, 그때 K미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그리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열쇠를 사용하지 않고, 떨리는 손을 들어, 가냘픈 손가락으로 살며시 문을 두드렸다.
'똑똑.'
작지만 유난히 크게 울리는 소리였다. 나를 올려다 보는 그녀의 눈빛은 흙빛이었다.
그러자 안에서 허겁지겁 무엇인가를 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루를 울리는 짧은 발소리와, 이불이 급하게 스치는 바스락거림. 누군가 서두르는 기척이 분명했다.
K미는 불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열쇠를 자물쇠에 넣고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돌렸다.
'찰칵.' 작은 금속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현관문을 조금씩 밀어 열자 어두운 거실이 나타났다. 우리가 나올 때 닫혀 있던 두 방문은 모두 반쯤 열린 채였다.
K미가 가장 먼저 자신의 방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이불을 반쯤 걷어찬 채 벽을 향해 누워 있었다. 코골이는 멈춰 있었지만, 어깨가 일정하게 오르내리는 것으로 보아 잠든 모양이었다. 머리맡에는 마시다 남긴 물컵이 놓여 있었고, 이불의 위치와 흐트러진 베개를 보면 중간에 한 번 깨어났던 것 같았다.
K미의 얼굴에 잠시 안도와 두려움이 동시에 스쳤다.
그때 맞은편 방문이 조금 더 열렸다.
C가 문 뒤에 몸을 반쯤 숨긴 채 얼굴을 내밀었다. 기다리는 동안 잠들지 못했는지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에는 아직 붉은 기운과 당혹감이 남아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C의 시선이 빠르게 내 얼굴과 가운 차림을 훑었다. 이어 내 뒤에 서 있는 K미에게로 옮겨갔다.
두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너무 많은 질문이 오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에 있었는지.
왜 이렇게 늦었는지.
내가 왜 늦게 돌아왔는지.
그리고 술자리에서 주고받았던 말이 어디까지 현실이 되었는지.
K미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C야, 나…….”
C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녀는 K미가 다음 말을 꺼내기 전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마.”
“하지만…….” K미가 숨을 멈췄다.
“네가 말하면 내가 알아야 하는 일이 되잖아.” C는 목소리를 더 낮췄다.
거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것이 용서인지, 거부인지, 혹은 진실을 들을 용기가 없다는 고백인지 알 수 없었다.
K미는 한동안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이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C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남편은 중간에 한 번 깼어. 물을 찾길래 가져다줬고, 당신이 찾으러 나갔다고 하니까 다시 누웠어.”
그 말이 어디까지 설명이고 어디부터 변명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K미는 더 묻지 않았다.
“고마워. 그… 근데… 나는 안 찾았어?”
“당연히 찾았지. ㅋㅋ 애인 만나러 갔다 했지.”
“저… 정말?”
“설마… 걱정 말고 들어가서 자.”
“으응… 그… 그래… 고마워.” 속삭이듯 말한 뒤 K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기 직전, 다시 한 번 C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짧게 얽혔다.
그 순간 K미의 눈동자에는 안도와 함께,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C의 눈에는 ‘나는 네 사정을 다 알고 있어. 그래도 괜찮다’는 듯한, 묘한 확신이 어려 있었다.
둘 다 웃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짧은 침묵만이 흘렀다.
K미는 문을 끝까지 닫지 않았다.
반쯤 열린 채로 남겨둔 것은, 혹시 모를 소리를 서로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둘 사이에 생긴 묘한 유대를 완전히 단절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흐트러진 이불을 남편의 어깨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그 곁에 천천히 누웠다.
남편이 잠결에 몸을 뒤척이며 그녀 쪽으로 돌아누웠다.
K미의 몸이 순간 굳었다.
그러나 밀어내지 않았다.
남편의 팔이 무심코 자신의 허리를 파고들자,
그녀는 그 팔을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으로 감쌌다.
나는 그 모습을 더 보지 않고 우리 방문으로 향했다.
아내는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가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내가 문을 닫으려 하자.
“답답해 그냥 두고와, 어디서 찾았어?”
“응?.”
“괜찮아?”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은.”
아내는 그 말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나 역시 그녀가 무엇을 짐작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잠시 후 아내가 이불 한쪽을 들어 올렸다.
“그럼 됐어, 이제 들어와.”
나는 말없이 아내 곁에 누웠다.
아내는 등을 돌린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불을 끄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손이 이불 속에서 내 손을 찾아왔다.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얇은 벽 너머에서는 더 이상 코골이도,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네 사람 모두 잠들지 못한 채, 각자의 침묵 속에서 같은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아내가 언제 돌아 누웠을까? 이불을 반쯤 걷어찬 채 누워 있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그녀가 덮고 있던 이불을 젖히고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딱 소리가 나게 때렸다.
“아!”
아내가 깜짝 놀란 듯 짧은 교성을 질렀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숨이 아직 가쁜 채로.
그때, 옆방에서 뭔가를 거칠게 빨아 대는 듯한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진 낮고 억눌린 신음,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깊어지는 움직임. K미와 그녀의 남편이 관계를 갖는 소리였다. 마치 일부러 우리에게 들려주려는 듯, 점점 소리가 또렷해졌다.
아내가 내 귀를 물며 속삭였다.
“들리네……”
우리는 다시 몸을 겹쳤다.
얇은 창호지 너머로 옆방의 교성이 은은히 들려올수록, 우리도 박자에 맞춰 허리를 움직였다. C의 안쪽은 평소보다 흠뻑 젖어 있었고, 촉촉하다기 보다, 미끄덩거리는 웅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아까의 여운을 안은 채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둘이 뭔 작당을 한거야 흐윽... 오늘 따라 더 쪼인다 시팔...”
“하아... 거기... 거기... 당신이 좋았으면 됐어요”
“하쭈~ 이것봐라 오늘 죽을래?”
“응... 죽여줘 괜찮아... 죽여줘 여보... 하악~ 윽 윽 윽”
“그래 너 오늘 죽었어 돌려 먹었다 이거지”
“아... 아니야... 그냥 주워 먹은거야”
“이실직고 해봐”
“흐잉... 몰라... 그냥... 그냥... 해줘... 말하지 말고”
“그래서 좋았어?”
“흐흥... 몰라... 히잉 힉... 오빠! 거... 거기...”
두 방의 신음이 서로의 벽을 넘어 뒤섞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절정에 달하는 소리가 거의 순차적으로 복도를 울렸다.
결말: 메말라버린 삶에 심어진 새로운 씨앗
다음 날 아침. 식탁에 마주 앉은 네 사람의 얼굴은 언제나 같았던 여행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모두 어딘가 뻘쭘했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누군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결국 네 사람이 동시에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도 없었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 기념품 가게에서 소소한 물건들을 고르고 있을 때, 두 사람만이 잠시 남겨진 순간이 있었다.
K미가 작은 열쇠고리를 하나 집어 들더니, 아무 말 없이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평범한 나무 조각에 온천 마을 이름이 새겨진, 흔해 빠진 기념품이었다.
“이거…… 나 혼자 사기 뭐해서.”
나는 그 열쇠고리를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짧게 웃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다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다음 주 수요일…… 야근이라고 할 테니까.” 그 말에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몸을 돌렸다.
그때 C가 뒤에서 나타나 타박하듯 말했다.
“또 둘이서 뭐 해? 빨리 와.”
운전석에 앉아 있던 K미의 남편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웃었다.
“빨리 타. 거기서 뭐 그렇게 오래 걸려.”
차를 타기 직전, 기념품 가게 앞에서 카메라맨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네 분, 여행 기념으로 한 장 찍으시죠. 오랜만에 정겨운 부부를 보네요, 부부끼리 나란히 서 주세요. 제가 써비스로 찍어드릴께요”
그 말에 네 사람의 시선이 잠깐 엇갈렸다.
그러나 누구도 그 시선을 오래 붙잡지는 않았다.
남자들이 바깥쪽에 서고 두 여자가 가운데로 들어갔다. 카메라맨이 구도를 잡으려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는 동안, 누군가의 손끝이 다른 사람의 옷자락 너머를 가볍게 스쳤다.
실수처럼 보이기도 했고, 의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짧은 접촉이었다.
“조금만 더 붙으세요. 자, 웃으세요.”
'찰칵.'
사진 속 네 사람은 모두 평범하게 웃고 있었다.
오래된 두 부부가 함께 떠난 온천 여행의 기념사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에도 네 사람의 생활은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단체방에 약속이 올라왔고, 같은 식당에 마주 앉았으며, 때로는 같은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다만 누군가의 야근이 전보다 조금 잦아졌고, 누군가의 귀가 시간이 조금씩 늦어졌다.
아내가 늦은 밤 돌아오는 날이면 머리카락이 조금 젖어 있거나, 옷깃에서 집에서는 쓰지 않는 희미한 향이 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현관에서 짧게 인사만 건네고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나 역시 비슷한 빈틈을 남겼고 알아 챘을 것이다.
일찍 퇴근했다가 오히려 늦게 돌아오는 날이 있었고, 메시지를 보내놓고도 한동안 연락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느슨해진 넥타이와 셔츠 소매에 남은 낯선 비누 향을 아내가 눈치챈 듯해도, 그녀는 내 옆구리를 한 번 꼬집을 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작은 흔적과 시간의 공백에 관해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네 사람이 모이면 예전처럼 웃고 떠들었다. 식당에서는 메뉴를 두고 실랑이했고, 차 안에서는 지난 여행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 맞장구를 쳤다. 누가 보기에도 오래된 친구 부부들의 평범한 모임이었다.
다만 그 활발한 대화 아래에는 전과 다른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두 여자의 시선이 우연히 마주치면 K미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고, C는 기다렸다는 듯 잔을 들어 입술을 가렸다. 두 남자 역시 잔을 부딪치다가 눈이 마주치면 공연히 다른 화제를 꺼냈다.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지금의 관계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이름을 갖게 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더 큰 소리로 웃었고, 더 평범한 이야기로 침묵을 덮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아내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그녀는 무언가 들킨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곧바로 나를 한번 흘깃 바라보더니, 벨이 더 울리기도 전에 전화기를 움켜쥐고 황급히 욕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힌 뒤 희미한 통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에는 물소리가 이어졌다.
통화만 하러 들어간 줄 알았던 아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샤워까지 모두 마친 뒤였다.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고, 따뜻한 김과 비누 향이 그녀를 따라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협탁에 내려놓고 서둘러 이불 속으로 쏙 들어왔다.
나는 그녀가 코끝까지 끌어올린 이불을 살짝 걷으며 물었다.
“누구야?”
“K미 남편”
“이 시간에?”
“다음 여행 일정 물어본다고.”
“일정만 묻는데 욕실까지 들어가서 받아? 샤워하면서 받았어? 영상통화?”
아내는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렸다.
“시끄러워. 당신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잖아.”
“나? 나는 기회가 있어야 뭘 하지.”
“내가 뭘 어쨌다고, 글고... 기회를 줘도 눈치만 보던 사람이.”
“그래서, 그 XX는 잘 지낸대?”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장을 바라봤다.
“… 그런가 봐.”
“완전히 애인 다 됐네.”
“... 애인은 무슨...”
“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어디까지 갔어?”
아내의 귀가 금세 붉어졌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무릎을 끌어올리며 내 옆구리를 발끝으로 툭 밀었다.
“아야야, 아포!”
“그러는 당신은? 좋았어?”
“나?... 나야 K미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그냥 조금 맞장구를 쳐준 거지.”
“아주 그냥~ 오래 오래 맞장구를 쳐줬나 보네.”
“ㅋㅋ 그랬나?.”
“바보”
“다음에 쟈기가 기회를 만들어주면? 그때는...”
아내가 이불 밖으로 눈만 내놓은 채 나를 흘겨봤다.
“그때는…… 외식 한번 제대로 해볼까?”
“뭐? 뭐라고? 이씨!”
“농담이야. 농담, 영업 종료. 오늘은 문 닫았어요.”
“죽을래?”
그녀는 화난듯 말하면서도 다가오는 나를 적극적으로 밀어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불 속에서 내 손을 찾아 잡더니, 웃음을 참는 것처럼 어깨를 잘게 떨었다.
그날 밤에도 우리는 끝내 진실을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남겨둔 마지막 예의인지, 아니면 다음을 기다리는 비겁한 허락인지 알 수 없었다.
그 후
네 사람이 다시 모인 저녁 자리에서 C의 시선은 전보다 조금 자주 K미의 남편에게 머물렀다. 잔을 채워주는 손길도, 음식을 건네는 순간도 아주 미세하게 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K미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모르는 척 웃었고, 나는 그 웃음을 바라보며 말없이 잔을 기울였다.
잠시 후 K미가 내 쪽으로 접시를 밀어주었다. 손끝이 식탁 위에서 아주 잠깐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번에도 누구도 묻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평온했다.
다만 그 평온함을 지키는 방식이 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가끔 단체방에 올라온 여행 사진을 다시 열어보곤 했다.
네 사람이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사진.
손이 어디에 놓였는지는 보이지 않았고, 엇갈린 눈빛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진은 아무것도 고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다시 같은 온천 마을을 찾게 된다면, 우리는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카메라 앞에 설 것이다. 각자의 배우자 곁에서 웃고, 평범한 두 부부인 것처럼 사진을 남길 것이다.
다만 그때도 우리가 끝내 모른 척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K미와는 늦은 야근을 핑계로 만날 때마다 K미는 내 품에 안겨 속삭인다.
“남편과 혈액형이 같으니까, 이번에도 내 안에 가득 씨앗을 심어줘요.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
“내 아내도 k미 남편의 아이를 갖는거 아니야?”
“그럴지도... ”
“어제... 어제... C가 늦었지? 남편도... 거기 좋아... 늦었어... 깊게 해줘... ”
“그... 그치! 어제... 윽... 아내가 늦게 들어왔던데, 이렇게?”
“응 좋아... 거기, 남편도... 오빠... 거기 거기... 좋아... 하아... 된다 하아... ”
“하... 씨발... 같이... 넷이 방 잡을까?”
“안... 안돼... 부끄러워요”
“근데... 왜 씨빨... 갑자기 쪼이는거야. 그 놈들이 얼굴에 쌀때 말해봐...”
“몰... 몰라... 윽윽... 거기 오빠... 나 또 또... 올라...요”
“어떄 쟈기는, 집밥이 맛있어? 외식이 맛있어?”
“아... 여보... 둘다 맛있어요~ 근데... 히익~ 나 나 또가... 하으... 외식이 더 좋아”
건조했던 그녀의 삶은
이제 그녀의 남편 그리고 내 체온과 암묵적인 행위들로 인해, 중독적인 쾌락으로 완전히 물들어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가장 깊고 어두운 욕망의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드러내지 않고, 묵인한 상태로... 아마도 언젠가, 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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